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지난 2021년 2월 4일, 네이버에는 공지사항 한 개가 올라왔습니다. 이 공지사항의 내용은 놀랍게도 일명 '실검'이라고 불리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의 폐지를 알리는 것으로 네이버는 폐지 이유로 다변화하는 검색 트렌드에 맞추기 위함이라고 간략하게 이유를 밝혔으며 2월 25일부로 서비스를 종료할 것임을 고지하였습니다.

2021년 2월 4일 올라온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 종료 사전 안내 공지사항

이후 20일 여가 지난 2월 25일, 사전에 공지되었던 대로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는 폐지되어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고 그 빈 자리는 날씨 정보와 코로나 관련 안내 문구가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 폐지 결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우 오랜 시간 서비스를 이어왔을 뿐만 아니라 항상 가장 눈에 잘 들어오는 네이버의 메인화면 검색 창, 그리고 검색페이지 우측에 큼지막하게 표시되어 있어 수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하고 이용할 수 있었던 서비스였고 나아가 네이버의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표시되던 부분을 대체하고 있는 코로나 정보

이와 관련하여 이번 포스팅에서는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가 걸어온 역사를 되짚어보고 폐지되기까지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와 함께 폐지가 남긴 시사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2000년대, '실시간 검색어 순위' 네이버의 강력한 무기가 되다.

2000년대 초, 인터넷 시대가 본격화 되던 시기 한국의 포털 사이트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였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압도적인 1위를 수성해온 '야후 코리아'에 이어 '네이버', '다음', '엠파스' 등 다양한 후발주자들이 속속 참전하면서 포털경쟁은 혼전양상을 띄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초까지 압도적인 포털점유율을 기록하던 야후 코리아

당시 야후코리아의 위상은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후발주자들은 야후를 이기기위해서 저마다 특색있는 서비스를 개발하였는데 네이버는 사용자간에 무엇이든 질문하고 답하는 '지식in' 서비스를, 다음은 웹메일 서비스 '한메일'과 '다음 카페' 서비스를 주력으로 밀어 붙이며 서서히 점유율을 올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3년경에 접어들게 되면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1위, 야후 코리아를 밀어내고 네이버와 다음이 각각 포탈점유율 1위와 2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2000년대 초중반 포털사이트 점유율

1위와 2위의 싸움을 이어가게 된 네이버와 다음의 경쟁은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의외로 싸움은 네이버의 압승으로 끝나고 네이버는 오늘날 까지 부동의 1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시 1위 경쟁에서 네이버가 압도적인 우세를 가져갈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2005년 5월 5일 시작한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는 빼놓을 수 없는 강력한 한 방이었습니다.

네이버 메인과 검색페이지 우측에 노출되었던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사용자의 검색 빈도가 높은 검색어를 실시간으로 1위~10위까지 순위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단순해보이는 이 서비스는 단순히 하나의 서비스 개념으로 시작했지만 나아가 포털 서비스 이용자의 패턴 자체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과거 포털사이트의 검색엔진 서비스 이용자는 자신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입력하고 검색엔진에 의해 출력된 정보를 확인하고 종료하는 것이 주요한 사용 패턴이었으나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가 도입된 후에는 자신이 원하던 특정 정보뿐만 아니라 메인화면에 노출되는 실시간 인기검색어에 호기심을 갖고 이를 확인하는 이용자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나아가 딱히 찾아 볼 정보가 없으면서도 컴퓨터를 키면 마치 매일 아침 신문을 보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하는 이용자의 빈도도 크게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덕분에 이용자가 평균적으로 네이버에 머무르는 시간이 매우 길어지게 되었고 이는 점유율 상승과 함께 메인 페이지 광고단가 상승으로 이어져 네이버의 성장에 크게 이바지하게 됩니다.

2010년대, 변질되는 실시간 검색어

광고판으로 전락하다.

그러나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는 조금씩 변질되어 서서히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실시간 검색어가 홍보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점 입니다. 흔히 이를 '어뷰징' 이라고 칭하는데 할인행사, 혹은 상금 이벤트를 내세워 특정 기업이나 제품을 검색하도록 유도하여 실시간 검색어에 랭크시키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면 제품 할인행사를 여는 이벤트
2019년 9월 18일, 광고로 도배가 된 실시간 검색어

초기에는 이러한 홍보를 하는 곳이 많지 않았으나 고가의 광고대금을 지출하지 않고도 전국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포털서비스에 무료로 제품을 노출 할 수 있다는 점과 노출 대상이 매우 광범위하다는 점으로 인해 점차 많은 기업들이 이를 이용하였습니다.

실시간 검색어로 올라온 키워드를 무의미하게 나열한 기사들

물론 기업들 뿐만 아니라 일부 언론사들 역시 마찬가지로 실시간 검색어로 올라오는 키워드를 무의미하게 나열하여 노출 빈도를 높이고 기사 클릭을 유도하는 등 행태를 보여오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는 본래의 목적을 잃어갔고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광고판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질타를 받게되었습니다.

여론전 싸움판으로 전락하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제점도 있습니다. 바로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가 특정 세력들의 여론전을 위한 싸움판으로 이용된다는 것입니다.

대선을 4개월 여 앞둔 2012년 8월 21일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이는 주로 특정 후보 지지세력 등 정치적 집단에 의해 벌어진 문제로써 이른바 총공이라고 불리는 행위를 통해 특정 시간에 특정 키워드를 동시에 검색하여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반영시키고 이를 통해 유리한 여론을 형성해보려는 어뷰징 행위의 일종입니다.

실시간검색어 총공을 지시하는 홍보들

이러한 총공 행위는 해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세력들에게는 거부감과 반발감을 유발했고 이러한 반발심리를 표현하고자 다시 반대급부의 총공이 이루어지면서 실시간 검색어는 어느새 정치세력 싸움판이 되어가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게 되었습니다.

2020년대, 폐지의 길로 접어들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가 수 많은 어뷰징 행위로 오염되가는 모습을 보면서 네이버가 마냥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기술적으로는 기존의 통합적인 실시간 검색어 순위 표시가 아닌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개인 관심사에 따른 실시간 검색어 순위 표시로 전환하였으며 운영정책상으로는 광고, 여론조작 등을 목적으로 어뷰징 행위를 통해 등록되는 검색어는 순위에서 제외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등 정화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만으로는 앞서 언급된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고 과거보다 빈도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개편된 실시간 검색어 순위와 검색어 노출 제외 조항

이러한 문제점과 함께 한 가지 의혹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바로 관리 주체인 네이버가 자신들의 입 맛에 맞춰 어떠한 키워드는 쉽게 실시간 검색어에 반영시켜주고 반대로 입 맛에 맞지 않는 키워드는 검색어에 반영이 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이었습니다. 이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온 것으로 네이버에서는 이러한 의혹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정해왔습니다. 그러나 실시간 검색어를 통한 여론전이 본격화되면서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의혹을 제기했고 이해진 창업자가 국감에 나가 알고리즘을 검증받고 싶다는 말을 하게 될 정도로 압박을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공정거래위원회 네이버(쇼핑, 동영상 부문) 시장지배적 지위남용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 제재 발표자료 일부 발췌

거기에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의해 과거 네이버가 쇼핑 서비스와 관련하여 자사의 상품이 상단에 우선 노출 되도록 알고리즘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연쇄 작용으로 실시간 검색어 알고리즘에 대한 의혹은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2021년 2월 10일, 네이버는 공지사항을 통해 실시간 검색어(급상승 검색어) 서비스의 종료를 공지했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과 의혹, 불신이 해결되지 못하고 쌓여만 가자 네이버는 운영을 지속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2021년 2월 25일 실시간 실시간 검색어 순위(급상승 검색어) 서비스를 종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2005년 5월 5일 서비스를 개시한지 16년만의 일 입니다.

대체재? 데이터랩 시스템, 글쎄...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 종료 안내 일부 발췌

네이버 공지사항에 따르면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는 종료되지만 "사용자로부터 받은 검색어 데이터는 다시 사용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가치있는 정보로 돌려드리겠다" 라는 취지는 '데이터랩'을 통해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데이터랩은 지난 2016년 1월 14일 시작한 서비스로 네이버가 축적해온 검색어 데이터와 개인의 데이터를 융합하여 제공하는 일종의 데이터 분석도구입니다.

네이버 데이터랩

그러나 애초에 데이터랩 서비스는 데이터를 활용한 시장조사, 창업 등 보다 전문적인 분야에 쓰이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서비스라는 점에서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용자 입장에서 기존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후기, 폐지만이 정답이었을까?

이 포스팅을 작성하고 있는 3월 2일은 실시간 검색어가 사라진지 어느 덧 일주일이 지난 날입니다. 슬슬 익숙해질만도 한데 어린 시절부터 거의 매일 같이 봐왔던지라 아직도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하는게 버릇처럼 남아 습관적으로 확인해보곤 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실시간 검색어 대신 날씨정보만이 표기되어 있을 뿐이고 그제서야 없어졌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실시간 검색어 대신 날씨정보가 출력되는 모습

저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확인하시던 부모님께서도 왜 실시간 검색어가 안보이냐고 물어보실 정도로 남녀노소 누구나에게 상당히 대중적이었던 서비스였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꼭 없애야 했을까? 조금만 신경써서 관리했으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꽤나 남습니다. 사실 최근 몇 년 사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와 비슷한 이유로 사라지거나 개편된 서비스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댓글 시스템입니다.

최근 몇 년간 네이버의 댓글 시스템은 많은 개편을 거쳤다.

관리부실, 중립성 논란이 컸던 정치, 사회 뉴스의 경우 언론사가 댓글 정책을 결정하게 함으로써 네이버가 직접적인 책임을 회피하게 되었으며 악성 댓글이 논란이 된 연예, 스포츠 뉴스 댓글 시스템은 아예 폐지되었습니다. 이렇듯 먼저 서비스 개편 및 폐지를 결정한 댓글 시스템과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의 공통점은 한 때 네이버가 주축으로 내세우던 서비스라는 점입니다.

검색엔진 중심의 구글 홈페이지
포털 서비스 중심의 네이버 홈페이지

네이버가 국내 1위 포털 사이트로 자리잡게 된 원동력은 검색엔진의 성능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네이버는 검색엔진 중심이 아닌 포털로서의 역할을 중심으로 성장해왔고 메인화면에 자사의 서비스를 연계 함으로써 하나의 화면에서 수 많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복합적인 형태를 갖춘 포털 서비스를 구축해왔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서비스 중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소통의 장 역할을 하였던 댓글 시스템과 실시간으로 트렌드, 토픽을 순위화하여 이용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페이지 체류시간 폭발적으로 늘려온 실시간 검색어 순위 서비스였습니다. 이 두 서비스는 오랜 시간을 서비스 해오면서 앞서 말한 역기능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이에 못지 않게 다양한 순기능을 갖고있던 서비스였습니다. 특히나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에 있어 많은 기여를 해온 서비스였기에 때문에 조급한 폐지 결정이 더욱 아쉽게 느껴집니다.

네이버가 뉴스 댓글 관리를 위해 도입한 인공지능 시스템 클린봇

연달은 서비스들의 폐쇄는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 사이트들에게 하나의 큰 숙제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이라는 누구나에게 열려있는 공간의 특성상 다른 서비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카페, 블로그 서비스의 경우 어뷰징 행위나 악플 문제가 만연해있고 다른 서비스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포털 사이트 입장에서 이러한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매번 서비스 폐지로 대응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커지기 전 이를 조기에 방지할 수 있는 관리 시스템의 도입이야 말로 오늘 날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네이버는 뒤늦게서야 실시간 검색어 순위 시스템 개편, 댓글 클린봇 도입 등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였으나 이것이 유효한 성과를 거뒀는지는 의문인 상태로 앞으로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