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나라, 무료화를 선언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11년 전인 2005년 8월, 바람의나라에 정말 믿지못할 깜짝 소식이 하나 들려오게 됩니다. 바로 바람의나라가 기존의 유료정액제 정책을 버리고 '무료화'를 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람의나라가 서비스를 시작한 1996년 이래 줄곧 유지해오던 유료정액제 정책을 버렸다는 소식은 그간 바람의나라를 플레이 해오던 유저와 바람의나라를 한 번이라도 플레이했던 유저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조랑이의 바람일기 215화> 보너스 컷에서 최초로 무료화를 암시하였다.
<풍류삼매 4호> 2005년 7월 29일 메일진 풍류삼매 4호를 통해 알려진 무료화 소식
<조랑이의 바람일기 216화> 무료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있다.

결과적으로 무료화 전환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기존 유저들은 부담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매월 고정적인 정액요금제를 지불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게임을 떠났던 유저들이 복귀유저가 되어 다시금 바람의나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바람의나라를 접해보지 않았던 신규유저들 또한 소문을 듣고 바람의나라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즐기는 축제, 우려는 있었다.

2005년 7월 21일 올라온 공지사항, 클래식 RPG 5종에 대한 요금체계 개편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저가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던 이 시기, 오히려 우려를 표시하는 유저들 또한 존재했습니다. 그 이유는 2005년 7월 21일 공지사항에 나와있는 부분유료화, 그리고 유료아이템 샵 추가에 대한 대목 때문이었습니다. 일명 캐시샵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는 아이템을 판매하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표적인 부분유료화 게임 <메이플스토리>가 그러했습니다. 캐시샵 초기에는 치장용 아바타 위주로 판매되었으나 이어서 텔레포트, 호신부적 등 편의성 캐시아이템 등이 출시되었고 바람의나라 부분유료화 직전인 2005년 7월 무렵에는 최초의 확률형 아이템 '피그미에그'를 출시하는 등 점차 판매하는 품목이 게임 내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7월 21일 저녁무렵에 올라온 공지사항, 유저들이 우려하는 사항에 대해 해명했다.

2005년 7월 21일 아침 무렵에 올라온 공지사항을 본 유저들이 공식 홈페이지, 팬 사이트 등에서 수 많은 우려를 표하자 바람의나라는 당일 저녁 추가 공지사항을 통해 이러한 우려사항에 대해 해명하는 한편 운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게 됩니다.

[캐시샵 관련]
현재 확정된 내용은 없습니다. 단, 현 게임 체제에 영향을 주는 아이템은 판매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예전과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치장성, 편의성 아이템을 추가해 유료화할 예정이며, 기존아이템을 유료화 한다거나 월등한 능력을 갖춘 아이템은 판매되지 않을 예정입니다.

특히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캐시샵에 관련된 해명으로 캐시샵은 출시될 것이나, 치장성, 편의성 아이템을 위주로 판매할 것이며 현 게임 체제에 영향을 주는 아이템 즉 밸런스를 저해하는 아이템은 판매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있습니다. 이렇듯 공지사항을 통해 빠른 피드백을 하게되면서 유저들의 우려를 상당수 잠재울 수 있었고 10일 후 바람의나라는 예정되어 있던 대로 부분유료화로 전환되며 앞서 다룬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또한 부분유료화 이후에도 한동안은 치장형 캐시아이템만 출시되었기에 이러한 약속이 지켜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깨지라고 있는 법

2006년 1월 10일 캐시샵 업데이트, 치장형 아이템 외에도 축지령서, 초상비령서, 축지비서, 뗘뗘비서 등이 출시되었다.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은 2006년 1월 10일, 이 약속은 무색하리 만큼 깨지게 됩니다. 바로 오늘 날까지도 필수아이템으로 자리잡은 '축지령서'와 '초상비령서'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앞서 공지사항을 통해 편의성 아이템은 출시할 예정이라고 언급을 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축지령서와 초상비령서가 단순히 편의성 수준을 넘어서 게임의 판도 자체를 완전히 바꿔놨다는 점에 있습니다.

초상비령서를 사용하는 모습

기존 바람의나라에는 이동수단이라고 할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용처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 소환, 출두 마법과 부부 간에만 사용할 수 있는 사랑호출기, 이동속도를 늘려주는 말 등 그 종류도 적고 성능도 뛰어나지 못해 보조적인 역할만을 해왔을 뿐입니다. 하지만 상하좌우 7칸 이내 범위를 마음껏 이동할 수 있는 축지령서와 전방 5칸을 이동하는 초상비령서는 그 격이 달랐습니다. 지금까지의 보조적인 이동수단과는 비교가 안될 수준의 기동력을 가졌으며 벽을 넘는 등 활용성 또한 높아 퀘스트, 사냥 등 바람의나라의 핵심 시스템 전반에서 그야말로 신세계를 선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능이 입소문을 타다보니 그룹사냥에서 축초세트(축지초상)가 없으면 안되는 상황에 까지 도달하게 되었고 초상비령서와 축지령서를 구매하는 것은 어느새 당연한 문화가 되었습니다.

오늘 날 바람의나라를 즐기기 위해 베이스가 되는 필수 캐시아이템

이러한 편의성 아이템들은 이후에도 줄 곧 출시되었는데 경험치를 저장하는 십억경교환비서, 특정 지역으로 텔레포트 할 수 있는 지정귀환비령 등이 대표적 입니다. 물론 당연스럽게도 이러한 편의성 아이템들은 자연스럽게 필수아이템화 되어갔고 캐시샵이 출시된 지 11년이 지난 현재 기본적으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선 월 1만원 상당의 편의성 캐시아이템을 결제해야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사행성 아이템의 등장

바람의나라 최초의 사행성 아이템 '응원비서'

그리고 다시 6개월 여가 지난 2006년 6월, 뜨거웠던 4년 전 2002 월드컵의 감동을 이어받는 월드컵이니 만큼 수 많은 관심이 쏟아졌던 시기 바람의나라는 월드컵 시즌에 맞춰 새로운 아이템을 출시하는데 이 중에는 '응원비서'가 존재했습니다. 응원비서는 바람의나라 최초의 사행성 아이템으로 개당 900원에 판매되었으며 사용시 월드컵 응원문구가 세계후로 출력되는 동시에 랜덤한 아이템 1개를 얻게되는 아이템이었습니다. 고급아이템을 얻고싶어 하는 유저들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은 이 아이템은 꽤나 많은 판매를 달성하며 사행성 아이템 시대의 포문을 알리게 됩니다.

바람의나라의 대표적인 사행성 아이템 '도깨비피리'

응원비서로 돈 맛을 본 이후 제비 박씨, 도깨비피리 등 사행성 아이템이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사행성 아이템에서 나오는 아이템의 수준 역시 높아졌습니다. 물론 이에 맞게 사행성 아이템의 가격 자체도 조금씩 올라 최근에는 개당 2000원이 넘는 사행성 아이템이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행성 아이템을 통해 중, 고급 아이템이 매우 많이 풀리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과거엔 꽤나 괜찮은 아이템으로 불렸던 아이템들이 바닥에 버리고 다닐 정도로 가치가 하락하기도 했으며 제작이 어려운 최고급 아이템들은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만들어진 것보다 사행성으로 풀린 아이템이 더 많을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당연스럽게도 이는 게임 내 시세와 밸런스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게임의 진입장벽이 올라가다.

아이템에 잠재능력을 부여하는 '황금돋보기'

이러한 편의성, 사행성 아이템과 함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추가옵션 시스템입니다. 강화, 각인, 잠재능력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는 추가옵션 시스템은 오늘 날 바람의나라를 플레이 하는 데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조건으로 그 근간은 캐시아이템에 있습니다. 강화의 경우 슬롯을 뚫기 위해서 필요한 아이템을 캐시로 판매하며 각인은 각인부여에 필요한 비서의 옵션을 캐시샵에서 판매하는 주문비서판독기를 통해 랜덤하게 뽑을 수 있습니다. 잠재능력 역시 캐시샵에서 판매하는 황금돋보기 아이템을 통해 랜덤하게 부여할 수 있습니다.

강화, 각인, 잠재능력 등 다양한 추가옵션

추가옵션 시스템은 앞서 다룬 편의성, 사행성 아이템보다도 더욱 밸런스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데 추가옵션 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시간과 노력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던 체력, 마력 기반의 데미지 공식 비중이 낮아지고 반대로 과금과 운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옵션 기반의 데미지 공식 비중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자 바람의나라 시스템 자체가 pay to win의 구조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레벨 유저뿐만 아니라 저레벨 유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특정 레벨구간이 되면 사냥터 몬스터의 수준이 급격히 높아져 일정수준 이상의 추가옵션 작업이 되어있지 않는 캐릭터는 사냥터를 이용하지 못할 정도가 되는 등 사실상 게임을 즐기기 위해선 반드시 과금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자 게임의 진입장벽 자체가 매우 높아져 신규, 복귀유저가 거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벤트를 통해 신규, 복귀유저를 유치해도 벽을 느껴 단기간에 중도이탈 하는 등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뒤늦은 후회, 자정노력...?

신규, 복귀유저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고 과금구조에 지쳐 떠나는 유저가 증가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바람의나라는 어느새 완벽한 하향세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기감이 생기자 지금까지는 무작정 과금모델을 늘려오던 바람의나라도 조금은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기존 캐시아이템으로 판매하였던 편의성 아이템 '십억경교환비서'를 게임머니로 구매할 수 있도록 변경한 것입니다.

2013년 9월 5일 공지사항, 캐시아이템 '십억경교환비서'의 판매종료에 관한 내용

그리고 사냥 중 획득한 경험치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환경을 보다 쾌적하게 만들고자 2013년 9월 12일(목) 십억경교환부적 아이템이 업데이트 됩니다. 십억경교환부적 아이템은 영혼사에 위치한 도호귀인NPC를 통해 금전으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십억경교환비서에 관한 공지사항이 올라오자 유저들은 "이제야 정신을 좀 차린것이냐", "정말 오랜만에 보는 개념패치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편의성 아이템 '십억경교환비서' 2013년 9월 12일 캐시샵 판매가 중단되고 게임머니로 구매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저 착각에 불과했습니다. 십억경교환비서의 캐시 판매가 중지된지 불과 2주도 지나지 않은 9월 25일, 괴유서버에는 새로운 캐시아이템이 테스트되고 있었습니다.

기존 수동이었던 십억경교환비서의 기능을 자동화한 '십억경자동교환비서'

바로 '십억경자동교환비서'였습니다. 기존 십억경교환비서는 쌓인 경험치를 십억경으로 변환하기 위해선 아이템을 일일히 사용하여 수동으로 변환해야했지만 십억경자동교환비서는 이러한 과정을 자동화한 캐시아이템으로써 최초 1회 아이템을 사용하기만 하면 30일간 신경 쓸 필요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압도적인 편의성을 갖고 있는 아이템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억경자동교환비서는 출시 직후부터 새로운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반면 게임머니로 판매되는 십억경교환비서를 사용하는 유저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조삼모사였던 셈입니다.

지켜지지 못한 유저와의 약속

부분유료화를 앞둔 2005년 7월 21일, "현 게임 체제에 영향을 주는 아이템은 판매할 계획이 없다"라고 했던 유저와의 약속은 6개월도 되지않아 초상비령서, 축지령서를 출시하며 깨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마치 깨진 유리창 효과처럼 무분별한 캐시아이템 출시가 이어졌습니다. 뽑기형 사행성 아이템부터 게임체제 자체를 뒤바꾼 추가옵션 아이템까지 수 십, 수 백개의 캐시아이템이 추가되면서 게임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갔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유저들의 이탈이 이어졌습니다.

그래도 떠나간 유저들은 마음 한 구석에 바람의나라를 기억하고 있었고 시간이 흘러 문득 추억에 휩쓸려 돌아와보려 했지만 떠나갔던 그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캐시아이템과 그로 인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게임시스템은 더 이상 추억 속의 바람의나라만을 생각하고 플레이하기엔 감당이 되지 않을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추억은 추억으로 묻어둔 채 많은 유저들이 떠나가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벌써 10년 이상이 되었고 그 사이 바람의나라는 완전히 빛을 잃었습니다. 과거 10만명이 넘었던 유저 수는 채 5%도 남지 않아 일부 서버에서는 컨텐츠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유저 수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서버들이 통합되었지만 통합 이후에도 여전히 유저 수는 턱 없이 적은 것이 냉혹한 현실입니다.

바람의나라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지금의 바람의나라는 바람의나라가 아니다", "차라리 구버전 클래식서버를 출시해라" 이러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단순히 구버전 시절 그래픽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절,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운영을 하던 시절을 그리워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